
우린 둘 다 첫사랑에 CC였다. 사귀는 동안에는 서로 크게 다툰 적도 없었다. 걔가 단 한번도 나에게 화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. 일방적으로 나만 짜증내고 있다는 걸 헤어지고 몇년이 지난 최근에서야 깨달았다. 물론 나 혼자 화내면 나만 이상한 사람 되니까 나도 화낸 적이 손에 꼽히지만. 싸운 적도 없는데 왜 헤어졌냐고 묻는다면......걔는 입대를 했고 난 사는게 버거워서 누굴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. 앞서도 내 상태가 요즘 우울하다고 썼지만 내 남친이 군대 간 1년 뒤 즈음부터 내 인생이 좀 힘들었다. 결국엔 내가 먼저 차버렸다. 그 뒤에 진상 같은 일이 몇 개 더 있지만 아름답지 못하니 스킵.
몇 년이 흘러서 올해 다시 만나게 되었고 난 친구로 지내자고 말을 건냈다. 밥이나 한번 같이 먹자고 내가 먼저 말해놓고 얼마나 떨었는지 모른다. 혹시나 나에게 원망의 말을 쏟아부으면 어쩌지하고 말이다. 하지만 걔는 웃는 얼굴로 날 대했다. 몇 년만에 만난게 아니라 마치 어제보고 오늘 다시 보는 사이 같았다. 다시 만나면 "그 땐 내가 미안했어" 라고 꼭 사과하고 싶었는데 그 말 마저 잊어버릴만큼 일상 같았다. 우리는 헤어질 때의 이야기는 쏙 빼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굴었다.
그 날 후로 남친 쪽에서 계속 약속을 잡긴 했지만 헤어진 연인 답지 않게 자주 만났다. 하지만 만날 때 마다 난 나를 감당하지 못해서 또 너에게 짜증을 내거나 우울해했고......넌 아무렇지 않게 날 위로하고......난 미안하다고 또 사과하고 ...돌아와 죄책감에 눈이 붓도록 울다 잠들고
영화를 보고 난 승민과 서연의 사랑이 어떻게든 이루어지기를 바란다고 말했다. 남친은 승민과 서연이 각자의 삶을 살았으면 좋겠다고 했다. 아이러니하게도 우리가 다시 만날 땐 반대의 입장이었다. 난 사는게 너무 지쳐서 넌 너대로 난 나대로 였다면......남친은 니가 내 첫사랑인데 어떻게 잊냐고 했다. 그런건가보다. 헤어진지가 언제인데 아직도 내가 사준 지갑을 쓰고 내 예전 핸드폰번호를 기억하고 있었다. 아니 예전 내 사물함 비밀번호까지도 잊지 못한 그였다. 난 여전히 그대로인 그의 핸드폰 번호 하나조차 기억나지 않았는데....
이게 몇 주전 이야기다. 아직도 사는게 힘들고 우울하지만........연애란게 참 좋은거구나. 누군가 의지할 사람이 있다는게 이렇게 좋은거구나. 예전엔 대수롭지 않게 여기던 소소한 모든 것들이 마냥 행복하다. 손을 잡고 길거리를 걸을 수 있어서, 벤치에 앉아 머리를 기대고 쉴 수 있어서 행복하다.
하지만 혹시라도 또 다시 상처 줄까봐 조심스럽다. 내가 먼저 이별을 고했던 탓에 죄책감이 크다. 그와 비교해서 내가 너무 못난거 같아 자괴감에 빠지기도 하고.......내가 참 나빴다. 내가 더 잘해야겠지. 미안한만큼 앞으로 더 사랑한다고 말해주고 힘이 되어 주어야겠다.
넌 내 첫사랑이까 다시 사랑할 수 밖에 없다고 말하는 그 녀석이 고맙다.






